







 Episode 001 - 기록의 시작


 나는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한 번 더. 여전히 아무 소리도 없었다.

 주소를 잘못 찾았나.

 번호판을 다시 확인했다. 221B. 여기가 맞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베이커가의 다른 건물들과 다를 바 없는 붉은 벽돌 건물. 간판도, 명패도 없었다. 현관문 옆에 놋쇠 번호판 하나가 전부였다. 초인종 줄조차 없었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 손잡이를 돌려 보았는데, 문이 그냥 열렸다.

 “…잠겨 있지 않았던 건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냄새가 훅 끼쳤다.

 유황. 무언가 끓고 있는 냄새. 그 아래로는 오래된 책 냄새. 나 존 워커는 문간에 반쯤 걸친 채 멈춰 섰다.

 정말 여기 사람이 사는 건가?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2층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발소리도, 인기척도 없었다.

 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른쪽 어깨가 쑤셨다. 전쟁에서 얻은 오래된 상처였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계단을 오를 때면 도졌다가, 다시 가라앉곤 했다. 이제는 익숙해져 있었다. 그것은 그저 내 일부였고, 남은 평생 안고 갈 무언가였다.

 2층 문 앞에 이르렀다.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들어 올리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워커 씨.”

 내 손이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나는 아직 노크를 하지 않았다.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책이었다. 벽면 책장을 가득 채운 것은 물론이고, 바닥에도 쌓여 있었다. 소파 위에도. 탁자 한쪽 끝에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수선해 보이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어떤 사적인 논리에 따라 정돈되어 있는 듯했다. 내가 채 해독할 수 없는 논리에 따라.

 실험대 위에는 시약병과 유리 기구가 줄지어 있었다. 그중 하나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데워지고 있었다. 그 냄새의 정체였다.

 한쪽 벽은 신문 스크랩과 손으로 쓴 메모로 빽빽이 뒤덮여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몇몇은 실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다른 것들은 그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언뜻 보아도 몇 개 정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벽난로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창밖을 내다보는 것 같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유리에 비친 방 안을 보고 있었다. 그 각도에서는 응접실 전체가 보였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내가 거기 서 있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남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계단에서 두 번 멈추셨더군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냄새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제 목소리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노크하려고 손을 든 채 문 앞에서 멈췄다가, 마음을 고쳐먹으셨죠. 걸을 때 오른쪽 어깨가 살짝 처지는 걸 보니 오래된 부상이 있군요. 그 보정이 걸음걸이에 배어 있습니다. 최근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그가 천천히 돌아섰다.

 회색 눈. 그의 시선이 나를 훑었다. 빠르고, 정확하게.

 “전장입니까, 사고입니까?”

 “…전장입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엘리엇 홈즈입니다. 앉으시죠.”

 악수를 나누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유리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어.

 그렇게 시작되었다.

 악수를 마친 뒤 나는 소파에 앉았다. 홈즈는 벽난로 옆 안락의자에 앉았다.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군의관이셨습니까?”

 “네. 아프가니스탄 인근에 주둔했습니다.”

 “돌아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세 달쯤 됩니다.”

 홈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고마웠다. 귀국한 뒤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첫 질문을 던졌다. 거기는 어땠습니까?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방은 위층입니다. 짐이 많지 않으시면 내일 들어오셔도 좋습니다.”

 “방세는요?”

 홈즈가 금액을 말했다. 내 형편으로 감당할 수 있는 액수였다.

 “그렇게 하죠.”

 그렇게 정해졌다.


 그날부터 나는 베이커가 221B에 살게 되었다.

 방세는 홈즈와 나눠 냈다. 딱히 갈 곳도 없이 전선에서 돌아온 사내에게는 나쁘지 않은 거처였다. 1층에 사는 집주인 허드슨 부인은 조용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홈즈에 대해 단 한마디만 했다.

 “별난 사람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 말이 옳았다.

 홈즈는 별났다.

 그는 으레 끼니를 걸렀다. 허드슨 부인이 올려 보낸 음식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인 경우가 더 많았다. 또 어떤 때는 밤새 무언가를 끓이거나 태워서 집 안을 매캐한 연기로 가득 채웠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바이올린을 켰다. 그것을 음악이라 부르는 건 너그러운 표현이겠지만. 

 그것은 차라리 일종의 사고(思考)처럼 보였다. 두서없는 몇 음을 반복하다가, 침묵, 그러다 무언가를 황급히 적어 내려가는 식이었다.

 어떤 날은 온종일 입을 다물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한마디도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었다. 홈즈는 그저 말할 이유가 있을 때 말하고, 없을 때 입을 다물 뿐이었다. 말할 거리가 있다고 여기는 기준이 나와 다르게 설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가 하면 말이 쏟아지는 날도 있었다.

 사건이 그를 사로잡은 때였다. 추리가 맞아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방 안을 서성였다. 그럴 때면 나는 최대한 가만히 있으면서 들리는 것을 받아 적었다. 훗날 그 메모들이 사건 기록의 절반을 채웠다.

 나는 이 집에서 살면서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개인적인 기록이었다. 이 별난 사내와 함께 지내며 벌어지는 별난 일들을 적어 두고 싶었다. 홈즈는 내가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사흘째 되던 날, 홈즈가 내 일지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계속 쓰십시오.”

 그는 서두도 없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자기 생각 속으로 물러났다.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때쯤에는 홈즈가 이유 없이 무언가를 말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개인적인 메모는 사건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건 건드리지 마십시오.”

 이사 오던 날, 내가 벽 앞에 서 있을 때 홈즈가 말을 건넸다.

 나는 벽 한쪽을 뒤덮은 스크랩과 메모를 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손으로 쓴 메모, 신문 기사, 알아볼 수 없는 장소들의 작은 사진, 그리고 이름들.

 “이게 전부 한 사건입니까?”

 “셋입니다.”

 홈즈가 내 등 뒤에서 답했다.

 “그중 하나는 아직 사건이 되지 않았고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멈춰 서서 물었다.

 “사건이 되지 않았다니요? 아직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입니까?”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일어났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그 둘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못 합니다. 그래서 지켜보는 거죠.”

 홈즈는 그렇게 말하고 실험대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다시 벽을 바라보았다.

 지켜본다.

 그 말이 마음속 어딘가에 걸렸다.

 나는 군의관이었다. 전장에서 내가 한 일은 관찰이었다. 상처가 어디인지, 얼마나 깊은지, 당장 손을 써야 하는지 아니면 이미 늦었는지. 더딘 판단은 목숨을 앗아갔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보는 법을 익혔다.

 홈즈 역시 관찰자였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달랐다. 나는 눈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홈즈는 그곳에 없는 것을 보았다. 더는 남아 있지 않은 단서, 이미 사라진 흔적,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결론. 그는 그 사이의 빈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직 사건이 되지 않은 무언가를 지켜본다.

 나는 그런 지각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그날이 수사의 시작이었다.

 홈즈는 오후 내내 소파에 누워 있었다. 두 시간. 세 시간. 미동도 없이. 눈은 뜨고 있었지만, 천장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허드슨 부인이 차를 올려 보냈다. 홈즈는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창가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척하며 그를 지켜보았다. 나는 여전히 그 상태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 알지 못했다. 무기력인지, 집중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엇인지.

 “기록 보관소에 가 본 적 있습니까, 워커?”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눈은 여전히 천장에 고정한 채.

 “없습니다.”

 “시티 외곽에 있습니다. 폐쇄된 지 이십 년 됐죠.”

 잠깐의 침묵.

 “그곳에는 있어서는 안 될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있어야 하는데 없는 기록도 있고요.”

 나는 책을 내려놓았다.

 “이 사건은 누가 의뢰한 겁니까?”

 “아무도요.”

 “그럼 어떻게 아셨습니까?”

 홈즈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사건 보드의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내가 놓치고 있던 자리에 핀으로 꽂힌 작은 신문 스크랩이었다.

 나는 다가가 그것을 읽었다.

 시 기록 행정 개혁안 논의 - 봉인된 보관소 처리 방침 결정 보류

 날짜는 사흘 전이었다. 사회면 한구석에 묻힌 짧은 기사. 처음 읽었을 때는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않는 종류의.

 “이게 단서입니까?”

 “기사 자체는 아닙니다.”

 홈즈가 보드에서 스크랩을 떼어 냈다.

 “단서는 그게 우리 우편함에 도착한 방식입니다. 배달용으로 접힌 신문에는 정해진 방향이 있습니다. 이건 반대로 접혀 있었습니다. 이 기사가 맨 위로 오도록 접혀 있었죠. 누군가 우리가 이걸 보기를 원한 겁니다.”

 “누군가 일부러 넣었다는 거군요.”

 “그뿐이 아닙니다.”

 홈즈가 보드의 다른 종이를 가리켰다.

 “삼 주 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통지가 하나 왔습니다. 역시 기록 보관소에 관한 것이었죠. 그때는 우연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두 번이면···”

 “··· 그건 패턴이군요.”

 “바로 그겁니다.”

 나는 두 종이를 번갈아 보았다.

 누군가 홈즈에게 이 사건을 떠넘기려 하고 있었다. 보수를 제안하지도 않은 채로.

 홈즈는 외투를 집어 들며 말했다.

 “기록이 사라진다는 것은, 누군가 기억을 지우려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억을 지우려는 자는 언제나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죠.”

 그는 멈추지 않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대답 대신 나는 일지를 집어 들었다.

 외투를 걸치며 첫 줄을 썼다.

 오늘 사건이 시작되었다. 의뢰인도, 사건의 이름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 기록 하나와, 그것을 쫓으려는 사내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 뒤를 따르는 자.

 아래층 계단에서 홈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두르시죠, 워커. 기록이 사라지는 데는 시간이 조금도 걸리지 않습니다.”

 나는 문을 닫고 그를 따라갔다.

 내려가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나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죽어 가는 이들 곁에 앉아 이름과 날짜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적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제 다시 같은 일을 하게 될 모양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죽어 가는 이의 곁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쫓는 사내의 곁에서.

 그리고 어쩌면, 그 기록들이 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기록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나쁘지 않은 일 같았다. 기록이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누군가는 그것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런던의 하늘은 납빛이었다. 안개가 거리 저편을 천천히 지워 가고 있었다.

 사건의 첫날이었다. 아직 이름도, 의뢰인도 없는. 그러나 분명히 시작된 사건이었다.